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뤼순 공방전 (문단 편집) == 배경 == [[러일전쟁]] 개전 당시 일본 측은 일본 본토에서 만주에 이르는 보급로 및 진격 루트를 확보하기 위해 여러모로 노력하였다. 일본 측이 계획한 만주지역에서의 일본군 보급선은 아래의 세가지가 있었다. 1. [[대한제국]]의 의주(義州)에서 시작해 압록강 대안의 안동(安東) ~ 봉황성(鳳凰城)으로 이어지는 선. 2. 요동반도 서안의 영구(營口)에서 시작해 해성(海城) ~ 요양을 거쳐 봉천으로 이어지는 선. 3. 요동반도 끝의 다련(大連)에서 뤼순 ~ 요양으로 이어지는 남만주 철도선. 이러한 보급선 셋 중 둘이 황해에서 요동반도를 통하였으며, 따라서, 일본군의 입장에서 보급선을 안정화시키기 위해서는 황해의 제해권을 쥐는 것이 급선무였다. 즉 다롄의 바로 옆에 있는 [[뤼순]][* 오늘날에는 다롄에 포함됨.]에 해군 기지를 건설, 주둔하고 있는 태평양함대와 러시아 육군을 무력화시키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이 때문에 전쟁 발발 전부터 일본군은 뤼순항에 대한 대응책을 대비하였었다. 1903년 12월 30일 일본 해군은 1. 뤼순 외항에서의 기습, 2. 뤼순항 봉쇄 3. 외항에서의 포격을 통해 뤼순 내항의 함정 격파라는 3단계 과정을 거처 해군 단독으로 뤼순을 공략하거나 뤼순 항 내의 러시아 해군을 완전히 격파, 전략적 가치를 제거할 것을 결의하였다. 일본 해군은 이때 육군의 개입을 바라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 육군 또한 일단은 뤼순에 대한 공략 계획을 짜 놓았으나 뤼순 공략의 우선권은 이때 해군 측에 있었다. 2월 4일, 일본 대본영은 러시아 함대가 뤼순 외항에 정박 중이라는 정보를 입수하였고, 이를 기습에 최적인 상황이라 판단한 대본영은 궁정회의에서 전쟁 시작을 결의, 군사행동에 들어갔다. 2월 6일 [[연합함대]] 사령장관 [[도고 헤이하치로]] 해군 중장은 작전 계획을 하달 후 사세보 항을 출항, 2월 8일에 뤼순 항 44해리 근처까지 접근였으며, 2개의 수뢰정 집단을 운용, 2월 9일 새벽에 공격하였다.[* 2월 8일, 일본 해군은 제물포에서 러시아 함대를 기습 공격하여 격파하였으나 그 소식은 이때까지 뤼순 항에 도달하지 않은 상태였다.] 어뢰 공격이 없을 거라 여기고 방심하여 해저 철망을 걷어놓았던 상태였던 러시아 해군은 첫 공격에 3척의 함선이 파손당하는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해군은 일본 해군이 계획한 외해로의 유인 및 섬멸에 말려들지 않고 항구에서 저항하였으며, 해안 포대의 지원과 파손되어 내항으로 들어간 상태에서도 포를 쏘는 함선들의 지원을 받아 일본 해군의 2차 공격을 격퇴하였다. 이후 러시아측은 뤼순 항 방어를 위해 기뢰를 부설했고, 일본군은 여러 차례 반복된 기습을 수행하였다. 2월에 임명, 3월 초에 뤼순에 부임한 스테판 오시포비치 마카로프 해군 중장의 분투로 인해 일본군의 봉쇄 작전은 실패로 돌아가는 듯 하였으나 4월 13일 마카로프 제독이 탑승한 기함이 기뢰에 피격, 격침되었고 마카로프 제독 자신도 빠져나오지 못하고 전사하자 제해권은 일본 측에게로 넘어가게 되었고, 뤼순 항은 기뢰로 봉쇄되었다. 그러나 일본군이 초기에 계획했던 러시아 태평양함대 격멸에는 실패한 상태라는 점은 변하지 않았으며, 여기에 더해 러시아 측이 뤼순을 구원하기 위해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발트 함대를 제2태평양함대로 개편, 파견할 것을 결정하자 일본 측은 차츰 다급해지게 된다.[* 이 당시 러시아 제국의 발트함대는 대영제국도 위험시한 최대 규모의 함대이자 러시아 제국 해군의 핵심 전력이기도하였다..] 또한 뤼순 항에 대해 수행한 기뢰 봉쇄는 불완전하였으며 지속적으로 기뢰를 제거한 러시아 함대의 위협, 그리고 러시아측이 일본 함대의 예상 진로에 기뢰를 부설하여 피해를 입히기도 하는 등[* 특히 5월 15일에는 2척의 구축함, 1척의 순양함을 잃는 큰 피해를 입기도 했다.] 황해의 일본군 제해권은 언제나 불안정한 상태였다. 결국 일본 해군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뤼순 항에 대한 공략 또는 충분한 무력화가 불가능하다는 게 확인되기 시작하자 일본 육군은 뤼순 항 공략을 위해 노기 마레스케 대장을 지휘관으로 하는 제3군을 편성하였으며, 6월 중순에 다렌에서 편성을 마치고 뤼순 항 공략을 준비하던 제3군은 공식적인 해군의 요청(7월 12일)을 받자 즉시 뤼순 공략에 착수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